최근 부쩍 아톰이라는 이름이 많이 눈에 띈다. 배터리 하나로 8시간씩 쓸 수 있다는 Eee PC나 WIND 노트북의 관심 때문일 것이다. 이 미니 노트북에 들어가는 아톰 프로세서는 센트리노의 한 갈래인 노트북용으로 보이기 쉽지만 사실 그렇게 단순한 의미로만 등장한 것은 아니다. MID(mobile internet device)와 저소득 국가라는 극단적인 시장 목표를 정한 아톰 프로세서에 대해서 알아보자.
세대를 초월한 로봇 애니메이션, 아톰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원자’라는 너무나 단순한 뜻을 가진 이름의 이 만화는 60년대에 태어난 중년 아저씨나, 초등학생이나 누구나 보고 즐겼을, 전 세계인의 캐릭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 아톰의 이름을 쓴 CPU가 인텔에서 태어났다.
사실 인텔의 아톰은 우리가 잘 아는 ‘데즈카 오사무’의 애니메이션 철완 아톰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 CPU는 ‘100만 마력’으로 통하는 만화 속의 아톰과는 딴판으로 성능은 요즘 나오는 CPU에 비해서 좋지는 않다. 하지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은 크기와 적은 전력 소비량, 그리고 매우 낮은 가격까지 ‘작지만 강한’ 아톰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살리고 있다. 무소음 PC 마니아부터 소형 인터넷 장치를 찾는 사용자까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인텔 아톰 CPU, 과연 어떤 제품일까?
아톰의 뿌리는 임베디드 CPU
인텔하면 코어2 듀오나 쿼드, 셀러론 같은 일반 데스크탑, 노트북 PC CPU만 떠올리기 쉽지만, 인텔은 세계 최대의 반도체 제조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데스크탑/노트북 CPU는 물론이고 서버와 수퍼 컴퓨터용 CPU, 여기에 들어가는 칩셋, 세계 최대의 그래픽 프로세서 제조사 이름을 지니게 한 칩셋 내장 그래픽 코어, 네트워크 장치, 메인보드, 플래시 메모리 등 핵심 반도체 사업의 상당수를 갖고 있는 거대 기업이다.
<PDA나
임베디드 기기에 쓰이는 인텔 스트롱 암 프로세서다. 아톰이 이 역할을 물려받는다.>
그런데 인텔이 만든 CPU라고 해서 전부 인텔의 자체 기술로 만든 것일까? 대부분은 그렇지만 100% 그런 것은 아니다. 인텔도 다른 회사의 CPU 설계를 사다 자체 브랜드를 붙여 CPU를 만들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과거에 PDA와 공유기에 쓰이는 프로세서인 PXA 시리즈다. 원래 인텔 PXA 시리즈는 DEC사를 인수할 때 얻은 ‘스트롱 암’ CPU를 발전시킨 것인데, 이 CPU의 핵심 기술은 인텔이 만든 것이 아닌 영국 ARM사의 것이다. 세계 최대의 임베디드 CPU 기술 개발 기업인 ARM은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가전 기업은 물론이고 심지어 엔비디아 같은 그래픽 프로세서 기업까지 기술을 라이센스하는 저전력 소비 CPU의 대부다.
하지만 인텔 입장에서는 ARM사에 핵심 기술을 의존하며, 자유롭게 설계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닌 이 CPU가 달가울 리가 없었다. 재주는 인텔이 넘고 돈은 ARM이 벌기 때문인데, 그 때문에 인텔은 직접 만든 CPU 아키텍처, x86을 이런 시장에 쓸 수 없을까 항상 고민해왔다. 언제까지나 ARM같은 회사에 기댈 수는 없다는 판단을 내린 인텔은 PXA CPU 사업을 네트워크 어댑터로 유명한 마벨사에 팔고 임베디드 CPU 개발에 x86 아키텍처를 붙이기 시작했다. 이 결과물이 바로 인텔 아톰이다.
전기 냄새만 맡아도 움직인다?!
인텔이 초 저전력 소비/초소형 x86 CPU 개발에 팔을 걷어 붙인 진짜 이유는 점차 커지는 ARM 아키텍처 CPU에 대한 방어도 없지 않지만, 초 저가형 PC와 인터넷 전용 기기에 쓰일 CPU의 수요 역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산업용 기계와 네트워크 장비에만 쓸 CPU라면 지금처럼 낡은 CPU 기술을 공정 기술만 바꿔 내놓아도 저전력/소형화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성능이 예민하게 영향을 끼치는 초 저가형 PC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이 시장은 AMD의 지오드(Geode)와 VIA의 ‘에덴(Eden)’이라는 CPU가 인기를 끌었는데, 지오드와 에덴 모두 원래는 산업용 임베디드 기기용 CPU였지만, x86 기술을 기반으로 해 초 저가형 데스크탑/노트북 PC에서도 적지 않게 쓰였다. 특히 AMD 지오드는 OLPC 프로젝트의 간판 모델인 XO 등 개발도상국의 저가형 노트북 PC나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진샤 노트북 등에 쓰여 주목을 받기도 했다.
<'AMD
지오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고진샤 SA 시리즈 노트북.>
이런 초 저가형 PC는 CPU와 메인보드 가격이 매우 저렴해야 함은 물론이고, 전력 소비량도 매우 적어야 한다. AMD 지오드 LX같은 CPU는 성능은 기껏해야 펜티엄 III 500MHz 정도에 불과하지만, 전력 소비량이 아무리 많아야 5W를 넘지 않고, 적게는 1.5W 수준의 매우 적은 전기를 먹는다. 이 안에 CPU 코어는 물론이고 칩셋, 그래픽 코어 기능까지 들어 있음에도 전력 소비량이 5W를 넘지 않는 셈이다.
하지만 이 시장에서 인텔은 마땅한 대안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초 저전압 셀러론 M이나 펜티엄 M은 전력 소비량은 5W 정도로서 지오드와 경쟁할 만 하지만 칩셋까지 합치면 전력 소비량이 적지 않았으며, 가격도 매우 비쌌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다른 임베디드 CPU를 쓰자니 지오드보다도 훨씬 형편없는 성능을 내 명함을 함부로 내밀기도 어렵다. UMPC가 셀러론 M 프로세서를 써 성능이 좋지 않다는 인식을 떠안고서도 값이 100만원을 훌쩍 넘겼던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 때문에 인텔은 ARM을 대체하는 차세대 임베디드 CPU의 기반 기술 개발, 초 저가형 PC의 CPU 개발, 초 저전력 범용 CPU 개발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묶어 조심스럽게 준비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인텔은 저가형 PC의 CPU로서 셀러론 215를 내놓고, UMPC 등 인터넷 전용 기기의 CPU로서 셀러론 M을 바탕으로 불필요한 부분을 전부 떼어낸 코드명 메카슬린의 A100/A110 CPU를 내놓았다.
하지만 이 두 가지 CPU 모두 임베디드 시장과 초 저가형 PC 시장에 모두 쓸 수 있는 정답은 되지 못했는데, 셀러론 215는 전력 소비량이 발목을 잡았고 A110은 가격 문제가 큰 걸림돌이 되었다.
MID - 저전력PC, 목표는 같아도 쓸모는 천지차이
셀러론 215와 A100/A110은 어디까지나 차세대 임베디드/저전력 CPU 아키텍처로 가는 길에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두 CPU는 사용자들에게 인텔이 본격적으로 저전력/보급형 CPU 개발에 나섰음을 널리 알렸고, 차세대 CPU의 기대를 높이는 효과가 있었다.
인텔은 드디어 올 초 45nm 공정의 프로세서를 내놓으면서 본격적으로 초소형, 저전압 프로세서에도 힘을 쏟기 시작했다. 바로 이것이 아톰 프로세서의 등장 배경이다.
인텔 아톰 CPU는 감싸 안아야 할 시장이 매우 넓다. MID(Mobile Internet Device)라고 불리는 차세대 스마트 폰, PMP, UMPC는 물론이고 개발도상국에 쓸 초 저가형 PC까지 전부 아톰 CPU가 쓰일 수 있는 영역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아톰 아키텍처 CPU를 산업용 기기에까지 쓸 계획이다.
이런 시장은 가격에 민감하고 전력 소비량이 적어야 하는 점이 같지만 실제로 쓰이는 분야는 하늘과 땅 차이처럼 다르다. MID가 선진국의 유행에 가깝다면 초 저가형 PC는 개발도상국 시장에 맞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인텔은 아톰 시리즈 CPU를 MID 등 초소형 휴대 기기용과 초 저가형 PC용의 두 가지 모델로 만들었다. 첫 번째가 ‘센트리노 아톰’ Z 시리즈 브랜드를 달고 나오는 ‘실버손(Silverthrone)’, 두 번째가 일반 아톰, 또는 아톰 N 브랜드를 다는 ‘다이아몬드빌(Diamondville)’이다. 실버손 코어 센트리노 아톰이 MID 시장을, 다이아몬드빌 코어 아톰이 초 저가형 PC와 노트북 시장을 맡게 된다. 지금까지 선보인 미니 노트북이 아톰의 전부는 아니라는 얘기다.
<미니 노트북 분 아니라 아톰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2부에서 이어집니다>
글
: 김준연 / 아이클럽 온라인팀
편집
: 다나와 최호섭 기자 notebook@danawa.com
출처 = dana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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