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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배우기 : 생활지식

한식(寒食) - 세시풍속

by 3sun 2008. 4. 4.
한식(寒食)
- 【한】차다; 춥다; 서늘하다; 추위; 떨리다; 겨울; 가난하다; 그만두다
- 【식】밥; 먹다; 씹다; 제식; 헛말하다.
       【사】밥
       【이】사람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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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식(寒食:동지후 105일째 되는 날)의 어원

  한식은 자의(字意)대로 풀이하면 '찬밥을 먹는다'로 요약 될 수 있으며, 그 명칭에 대해서는, 중국 고속(古俗)에 이날은 풍우가 심해서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 습관에서 한식이라 칭한다는 설과, 진(晉) 나라의 충신 개자추(介子推)가 이날 산에서 불에 타 죽었으므로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이날은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다고 하여 한식이라 칭한다는 설이 있다.

  한식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대개 양력으로 4월 4~5일경이 된다. 이날 나라에서는 종묘(宗廟)와 능원(陵園)에 제향을 지내고, 민간에서도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가지고 성묘(省墓)를 하며 사초(莎草)도 한다. (사초(莎草) -무덤에 떼(잔디)를 입혀 잘 다듬는 일)


2. 한식의 유래

  한식에 대한 기록을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삼월조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산소에 올라가서 제사를 올리는 풍속은 설날, 한식, 단오, 추석 네 명절에 행한다. 술, 과일, 식혜, 떡, 국수, 탕, 적 등의 음식으로 제사를 드리는데 이것을 명절 하례 혹은 절사(節祀) 라 한다. 선대부터 내려오는 풍속을 쫓는 가풍에 따라서 다소간 다르지만 한식과 추석이 성행한다.

  까닭에 사방 교외에는 사대부 여인들까지 줄을 지어 끊이지 않았다. 상고하면 당나라 정정칙(鄭正則)의 사향의(祠享儀)의 글에 이르기를 옛날에는 산소에서 지내는 제사에 관한 기록이 문헌에 없었다. 그런데 공자가 묘를 바라보며 때에 따라서 제사지내는 것을 채택했으므로 이른바 묘제는 이에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이로 보아 한식은 중국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것이 신라시대에 우리 나라로 전래되어 우리의 풍속에 맞게 사대명절에 속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식은 글자 자의대로 더운 음식을 피하고 찬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속신(俗信)이 있어, 한식 또는 한식날이라 하였다. 한식의 유래에 대해 중국에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해 온다. 중국 고사에 이 날은 비바람이 심하여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 습관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개자추전설(介子推傳說)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국 진(晉)나라 충신 개자추(介子推)가 간신에게 몰려서 면산(綿山)에 가서 숨어 있었는데, 진 문공(文公)이 개자추의 충성을 알고 불렀으나 나오지 않았다. 도리 없이 면산에 불을 놓았으나 개자추는 나오지 않고 불에 타서 죽고 말았다. 그 후부터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이 날은 불을 쓰지 않기로 하고, 찬 음식을 먹었다."


3. 한식의 풍속

  경칩(驚蟄)과 춘분(春分)을 지나면서 음력 삼월(三月)이 되면 동장군(冬將軍)이 물러가고 겨우내 얼었던 대지는 서서히 녹아들기 시작한다. 봄은 곡식을 파종하는 시기이며 겨울 동안의 움츠림을 풀어헤치는 계절이다. 삼월의 절기로는 청명(淸明:양력 4월 5일, 6일), 곡우(穀雨:양력 4월 20일, 21일)가 있다.

  이 무렵이 되면 전통사회의 농가에서는 농번기에 접어들어 농사일을 서두른다. 이 시기의 농사일로는 가래질, 논둑 다지기, 논갈이, 못자리 만들기 등을 들 수 있다. 청명 무렵이 되면 논농사의 준비작업을 하는데, 겨우내 얼었던 논둑으로 논물이 새지않게 가래질을 한다.

  가래질을 마치고 쟁기로 논갈이를 하여 못자리를 만들면 곡우 무렵이 된다. 그 사이 볍씨를 일주일 가량 물에 담가서 싹을 틔우고 가래질과 못자리를 장만하면 논농사는 반은 한 것 이라고 생각하여 한숨을 돌리게 된다.

  한식은 동지(冬至)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며, 어느 해나 청명 안팎에 든다. 한식은 음력 2월 또는 3월에 들기도 하는데, 2월에 한식이 드는 해는 철이 이르고 3월에 한식이 드는 해는 철이 늦다고 한다. 이에 대해 '2월 한식에는 꽃이 피어도 3월 한식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는 옛사람들의 말이 전하여 온다.

  이날 비가오면 '물한식'이라고 하여 그해에 풍년이 든다는 속신이 있다. 또 한식날 천둥이 치면 흉년이 들 뿐 아니라 나라에도 불행한 일이 있다고 해서 매우 꺼려한다. 한식의 유래와 관련하여 이 날은 더운 밥을 피하고 찬 밥을 먹는다고는 하나 잘 지켜지지 않았다.

  한식은 조선시대에 설날·단오·추석과 함께 사대명절(四大名節)에 속했다. 이 날 각 가정에서는 제사음식을 마련하여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절사(節祀)라고 한다. 또한 여러 가지 주과(酒果)를 마련하여 성묘를 하기도 한다. 이때 조상의 묘가 헐었으면 떼를 다시 입히고 봉분을 개수하기도 하는데, 이를 개사초(改莎草)라고 한다.

  그러나 한식이 음력 2월에 들면 사초를 하지만, 음력 3월에 한식이 들면 사초를 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한식날이 되면 내병조 (內兵曹)에서 버드나무를 뚫어 불을 만들어 임금에게 올리고 그 불을 홰에 붙여 각 관아와 모든 대신집에 나누어주는 풍속이 있었다.

  이러한 풍속은 고대의 종교적 의미로 매년 봄에 신화(新火)를 만들어 쓸 때에 구화(舊火)를 일체 금지하던 예속(禮俗)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있어서 한식은 조상을 위한 제례와 환절기 불조심을 위한 금화(禁火)의 의미가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