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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배우기 : 생활지식

근로자의 날 - 勤勞者(노동절) - 메이데이(May Day)

by 3sun 2008. 5. 1.

노동절(5월 1일) 또는 근로자의 날은 2차 인터내셔널에서 제정한 날로 미국 노동운동을 기념하는 날이었으나 이후, 전세계적으로 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을 과시하는 기념일로 정착되었다.

북한에서는 사회주의 7대 명절 중 하나로 기념하며, 국제노동절이라는 이름으로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연혁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 서는 8만명의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미시건 거리에서 파업집회를 가졌다. 이들이 집회를 가진 이유는 노동력착취에 대항하여 8시간 노동을 보장받기 위해서였고, 노동자들의 파업이 얼마나 영향력이 강한지 깨달은 자본가들은 이들의 정당한 요구를 들어주었다. 당시 시카고 데일리 뉴스에서는 공산폭동이 일어날 것이라며, 이들을 공산주의자 취급했으나 사실 이들의 노동운동은 사회주의와는 무관했다. 단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시위를 가진 것 뿐이어서 미국 노동운동은 자본가, 정부, 우익 언론들의 탄압과 악평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출처 - http://ko.wikipedia.org/


왜 메이데이(May Day)인가?

5월 1일은 노동운동에 있어 특별히 의미있는 날이다. 이 날은 전세계적인 연대의 날이다. 과거의 투쟁을 기억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 우리의 희망을 펼쳐보이는 시간이다. 한 사람에 대한 권리침해가 모든 이에 대한 권리침해임을 기억하는 날이다. 그러나 왜 메이데이인가? 이 날은 어떤 역사를 가지는가?

백여년 전에 미국노동총동맹(AFL)은 "1886년 5월 1일 이후 법정 노동일을 8시간으로 제정할 것"을 주장하는 역사적 결의를 채택했다.

이러한 결의가 있기 몇 달 앞서 미국 전역의 수많은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을 목표로 투쟁하기 시작하였다. 숙련 노동자와 미숙련 노동자, 남성과 여성, 흑인과 백인, 이민자와 본토박이, 그들은 모두 함게 투쟁하였다.

시카고는 운동의 주요거점이었다. 5월 1일 300,000여명의 노동자가 몰려나왔다. 메이데이가 탄생한 곳이 바로 이 곳이다.

시카고의 아나키스트

시카고를 8시간 노동운동의 거점으로 만든 것은 바로 중앙노동조합과 거리에서 벌인 아나키스트들의 활동이었다.

아나키스트들은 8시간 노동일이 오직 직접행동과 연대를 통하여 쟁취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8시간 노동운동처럼 개량을 위한 투쟁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여겼다. 그들은 이 투쟁을 다만 사회혁명과 아나키즘(그들 강령의 표현대로라면 "협동적 생산체제에 기반을 둔 자유사회")의 구현으로 끝나게 될 계속되는 계급투쟁의 단지 하나의 전투라고 간주했다.

아나키스트들은 이러한 사상을 가지고 조직했으며 투쟁하였다. 아나키스트 노조는 그들이 목표로 하고 있는 사회의 유형을 반영하여, 아래로부터 대중의 직접통제에 근거하고 있었다.

미국의 지배계급은 그들의 이윤과 권력이 단결한 노동계급의 직접행동으로 침식당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헤아마켓(THE HAYMARKET)

시카고에서 5월 1일, 맥코믹 농기계회사 노동자의 절반 가량이 파업을 위해 몰려나왔다. 이틀 후 경찰은 시위대열에 발포를 해, 한명이 죽고 여러명이 부상을 당했다. 분노한 아나키스트들은 다음날 헤이마켓에서 항의집회를 소집했다.

그 집회는 평화로웠으며, 이내 비가 와서 거대 군중은 대부분 흩어졌다. 단지 200명이 남았을 때, 180명의 경찰대가 다가와 집회를 즉시 해산하라고 명령하였다. [후일] 시카고 시장에 따르면 "경찰이 개입할만한 아무런 이유도 없었던 것 같았다"고 했음에도 말이다.

그 순간 폭탄이 경찰대열로 날라들어, 한명이 죽고 70여명이 부상당했다. 경찰은 군중에게 발포하여,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테러통치가 시카고를 휩쓸었다. 공공장소, 노조 사무실, 인쇄소 그리고 개인주택이 (대개 수색영장도 없이) 침탈당했다. 다수의 용의자가 체포되고, 일부는 매수당했다. 주정부 검사 J. 그린넬은 공공연하게 "우선 수색을 하고, 법은 나중에 따져라"라고 지시했다.

8시간 노동운동은 언론을 등에 업고 한껏 고무된 침탈과 탄압으로 약화되었다. 지배계급의 주된 근심과 공포꺼리가 제거되었으며, 미국 노동운동과 아나키스트 운동은 후퇴를 경험하였다. 침탈로 문제 일부를 해결했을지 모르나, 그때 이미 희생양이 있었다.

재판

모두 아나키스트이자 왕성한 노조활동가인 여덟명이 살해 혐의로 법정에 섰다. 주정부로부터 여덟명 중 누구 하나라도 폭탄과 관련있다는 증거는 전혀 제출되지 못했다. 사실, 세명은 그 집회에 참석조차 않았으며, 나머지는 거기에 부인 및 아이들과 있었다. 편견에 치우진 재판관과 배심원, 그리고 히스테릭컬한 언론은 여덟명 모두에게서 유죄혐의가 발견된다고 확언했다. 그들의 유일한 "범행"은 그들의 아나키즘 사상과 노조활동,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지배계급에게 위협이 된다는 것이었다. J. 그린넬은 이를 명확히 해주었다. "아나키는 재판 중이다... 이 사람들은 선택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도자들이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항의에도 불구하고, 헤이마켓의 순교자 4명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장례행렬에 오십만명이 뒤따랐으며, 장지에 20,000명이 운집했다. 1893년에 일리노이주의 신임 주지사는 시카고와 전세계의 노동계급이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을 공식화했으며, 명백한 무죄와 "재판은 공정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순교자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1889년, 파리의 인터내셔날 사회주의자 대회에 참석한 미국 대표단은 5월 1일을 노동자들의 축제로 채택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는 노동계급의 투쟁과 "시카고의 8시간노동운동의 순교"를 기념하는 것이었다. 그때 이후로 메이데이는 국제적 연대를 위한 날이 되었다.

현재

올해[1994년] 바로 오늘 메이데이를 기념하는 유일한 이유가 마침 5월 1일이 일요일이기 때문이라니 설명치고는 슬프다. 메이데이의 유래가 되었던 사건은 메이데이의 참의미가 [영국] 노동당 정치가와 노조 관료의 연설을 듣고서 도시를 어슬렁거리며 걷는데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메이데이의 참역사와 의미가 은폐되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만약 시카고 순교자들의 아나키즘 사상이 더 잘 알려지고 실천에 옮겨진다면, 노동운동을 주도하는 노조 관료와 노동 정치꾼들은 자리를 박탈당할 것이다! 순교자들의 "시카고 정신"은 지금의 노동운동과 현체제 모두에 실질적이고 실천적인 대안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 사상은 혁명적 아나키즘이다. 노동당 중심주의(Labourism)와 맑스주의는 실패했다. 아나키즘만이 유일하게 자유와 평등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노동운동과 마찬가지로, 메이데이를 현체제와 이해를 같이 하는 모든 자들로부터 구해내야만 한다. 메이데이는 다시 한번 노동계급의 과거투쟁을 기억하며, 현재의 투쟁과 연대를 과시하는 날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여기서 멈춰선 안 되며, 매일매일이 5월1일이 되도록 해야한다. 우리는 실질적이며 투쟁적인 대안을 창출하여 낡은 것의 껍데기에 새로운 세상을 건설해야만 한다.

출처 - http://home.nownuri.net/~bapul/